CST두개천골치유와 힐링이야기

CST(두개천골요법)의 歷史역사1

천부경天符經 십거일적 2025. 3. 15. 13:59

CST(두개천골요법) 歷史역사1

 

CST(두개천골요법)의 국내 역사《Ⅰ》

 

1990년대 중반은 다양한 세기말의 휴유증들이 가시화되는 시기였다.

혼돈과 진보와 발전의 교차점에서 이룩한 과학의 업적은 인류의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삶의 충족을 가져왔는가 하는 점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아놀드 토인비는 "20세기는 정치적 갈등과 과학기술의 발전시기로써가 아니라

인류사회가 모든 인간의 건강을 실제 목표로 생각하는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새 천년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일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웰빙 시대의 서막이 바로 이 무렵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21세기를 맞이하여 국내에 두개천골요법 CST가 소개된것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두개천골요법이 처음 국내에 소개될 때만 하더라도 이런 치료기법들이 너무나 생소하고 낯설기만 하였다. 당시 뇌의 연구는 이른바 걸음마 단계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두개천골요법은 두개골과 천골 간의 율동적인 리듬을 조절하고 뇌척수액(C.S.F)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신경계,내분비계,면역계를 통합 조절하는 치료법이다. 두개골의 긴장, 뇌기능장애, 행동장애, 학습장애, 집중력부족, 뇌의 손상, 자율신경실조증, 우울증, 정신지체아, 자폐증, ADHD, TIC, PTSD, 얼렌증후군, 두개골성형, 안면비대칭 등에 도움을 줄 수가 있다.

두개천골요법은 어떤 경우에도 부작용이 없기 때문에 신생아, 유아, 어린이, 청소년,노인, 남녀노소 모두를 위한 건강관리 필수조건이라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19세기 후반 스틸(A, Still)박사로부터 시작한 정골 의학의 연구에서부터 시작하여, 그의 제자인 서덜랜드 박사에 이르러 활발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1920년대 미국의 서덜랜드(W. Sutherand)가 두개천골의 미묘한 움직임과 율동적인 리듬을 발견한 후 많은 난치병 환자를 치료하였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의 과학기술로는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약물이나 수술이 아닌 이런 시술법이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기피하였으며 강신술이나 안수기도, 기적, 신앙 치유처럼 보였다. 그 후 그의 제자인 Dr.Becker가 생명의 호흡과 내면의 건강 시스템에 대한 현대적 이해에 공헌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0~1980년대의 미시간대학교 교수인 Dr. Upledger가 여러 분야의 과학자, 의사, 해부학자, 생리학자, 생화학자 등의 생체역학팀을 구성하여 과학적인 방법으로 두개천골체계(CranioSacral System)를 실제로 증명할 수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두개천골치료법을 연구. 개발했고 이것을 가르쳐 대중화하는데 공헌하였다. 특히 어린이 자폐증(Autism)에 관한 임상연구에서 많은 성과와 함께 미국에서는 돌고래와 함께 하는 난치병치료로 유명하다. 두개천골요법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서 세계적으로 확산중이며, 여러 사람에 의해 꾸준히 연구 발전되고 있다.

 

국내의 경우, CST-뇌신경계 전문치료법이 1990년대 중반에 도입되어 전인적 치료법으로 소개되면서 소그룹 세미나가 열리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뇌신경계 분야의 치유법으로 독보적인 위치에 있으나, 당시 국내사정은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과 국선도, 단학, 기공 등이 주류를 이루는 시점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국내 연구자들은 두개골과 뇌 생리학에 대해 그 정보나 지식적 측면에서 일천(一淺)한 상태였다.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미국의 산넷 박사로부터 CST를 공부하고, 머픽 박사로부터는 S.O.T를 배웠으며, AMCT, A.K. 등을 공부한 사람들조차 CST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이것이 당시 국내의 현실이었다.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 전문과정을 마치고서 더욱 심도 있게 탐슨 테이블, 로간 베이직, 칵스, 페디본, 간스테드, S.O.T., A.K., AMCT, 디버스화이드 등을 열심히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은 CST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여건상 바로 활성화되기는 아직 이른 감이 있었으며 임상 경험실적이 전무한 상태이므로 실망스런 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CST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많은 동료들이 그동안 공부한 수많은 내용들이면 국내에서는 충분한데 왜 생소한 CST를 선택하려고 하느냐고 걱정어린 충고를 많이 해주었다.

 

CST의 놀라운 힘은 오직 5~10g뿐이다! 그 당시 카이로프랙틱이 대세였으나 치료용 장비가 없어도 맨손으로 할 수 있는 새로이 접하게 된 CST의 치유효과에 완전히 빠져들어 새로운 각오로 도전하면서 실제 임상에서 배우고 경험하며 매달리게 되었다. 고대 그리이스의 히포크라테스가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는 곳에 의술에 대한 사랑도 있다."라고 한 말은 시공을 넘어서 현재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더 쉽게 살아가는 방법들도 많았는데 이것을 선택하고 도전하는 길은 모험이었고 무척 힘든 길이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흥미로운 것은, 힘들수록 CST의 매력에 더욱 빠져든 것이었다. 당시에 최고의 약점은 임상적 노하우를 축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내에 처음 도입되고 당시에 CST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조차도 없으니 당연지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답답한 그런 세월 속에서도 난치병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제발 고통을 경감시켜달라고 부탁해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 결과에 나 자신도 놀랐던 만성두통, 중풍, 초기치매, ADHD, 자율신경 실조증, 공황장애, 우울증, 난독증, TMJ, 자폐아, 정신지체 장애, 뇌성마비나 파킨슨 환자, 심지어는 암환자들의 임상사례를 수많은 임상경험으로 축적하면서 임상적 노하우를 몸으로 습득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고 퇴원하라고 하니 어디 가서 고치라는 말인가요? 이제는 믿을게 CST밖에 없다." 고 하면서 매달리는 분들과 함께 웃고 울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CST가 지닌 놀라운 생명력이다. CST는 사랑이다. 사랑이 없는 CST는 무의미하며 치유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료출처- [김선애 CST-Brain연구소]